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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은 가장 깊은 곳으로 내려갑니다. 우리는 보통 몸과 마음이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이원론적 관점이 늘 자명했던 것은 아닙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에 관하여"를 읽어보면, 그는 몸과 그 몸이 하는 생각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심리학은 오랫동안 철학의 한 갈래로 다루어졌고, 데카르트의 영향이 결정적이었습니다. 데카르트는 마음을 비물질적인 것, 몸을 물질적인 것으로 나누었고, 물리법칙의 지배를 받는 것은 몸뿐이라고 보았습니다. 이후 많은 학자들로부터 반박을 받았지만, 이 견해는 우리가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에 여전히 영향을 줍니다.
초기 행동주의자들은 다른 방향으로 갔습니다. 인간 행동에는 환경적 원인만 있을 뿐 정신적 원인은 없다고 보았기 때문에, 그들에게 "마음"이라는 단어는 사실상 비어 있는 개념이었습니다. 1950년대까지 심리학은 심신이원론과 행동주의 사이의 양자택일에 갇혀 있었고, 결과적으로 대중적으로 자리잡은 쪽은 이원론이었습니다.
저자는 9장에서 이 이원론이 우리 건강에 끼치는 비용을 자세히 풀어냅니다.
이원론적 시각이 가져오는 가장 극단적인 결과 중 하나가 "심리적 사망" 현상입니다. 같은 환자가 낙관적인 분위기의 병동으로 옮겨지자 회복했다가, 다시 가망 없는 분위기의 병동으로 돌아오자 사망에 이르는 사례가 보고됩니다.
또 다른 예가 "성장실패증후군"입니다. 신체적 보살핌은 충분히 받지만 신체 접촉과 정서적 자극이 부족한 아기들에게 나타나는 발달 장애 현상입니다. 신체 건강과 정신 건강의 상호 의존성을 무시한 결과, 충분한 영양이 충분한 발달로 이어지지 못한 것입니다.
저자는 또 한 가지 이원론 — 생각과 감정의 분리 — 를 지적합니다. 정서를 경험하기 위해 반드시 인지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무심코 자주 들었던 음악에 더 친숙함을 느끼는 일은, 인지를 통한 정서가 아니라 인지 없이도 작동하는 정서의 예입니다.
이 구분이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어떤 감정을 왜 느끼는지를 의식하지 못하면, 우리는 "이렇게 느낄 수밖에 없다"는 자극-정서 연합의 포로가 됩니다. 원치 않는 감정으로 고통받으면서도 다른 길이 없다고 믿게 되는 것입니다.
저자는 4장의 핵심 개념인 "맥락"을 다시 9장으로 가져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고나 감정이 아니라 몸 위에서 그 힘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심지어 감각의 정확도조차 맥락의 영향을 받습니다. 같은 자극을 어떤 맥락에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 자극의 강도와 종류에 대한 우리의 평가가 달라집니다.
저자가 9장의 한가운데에 박아둔 문장이 있습니다.
생각이 맥락을 만들고, 맥락이 감정을 만든다.
이 한 줄은 책 전체에서 가장 자주 인용될 만한 표현이라고 느꼈습니다. 우리가 건강을 향해 할 수 있는 일은, 단순히 좋은 생각을 하는 일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어떤 맥락을 만들어 줄 것인지를 의식하는 일입니다.
알코올과 약물 의존은 치료가 어렵다고 여겨지지만, 9장은 그 어려움에 한 가지 균열을 냅니다. 맥락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가 분명히 드러나면, 그만큼 개입의 여지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저자가 인용하는 실험은 단순합니다. 알코올이 들어 있다고 믿는 그룹과 들어 있지 않다고 믿는 그룹에게 같은 음료를 마시게 했을 때, 실제 알코올의 유무와 상관없이 술이라고 믿은 그룹의 심박수가 느려졌습니다. 술을 마신 뒤의 생리적 반응 중 상당 부분이 알코올 자체가 아니라 "내가 술을 마시고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약물 중독의 경우도 비슷합니다. 자기 자신을 중독자로 정의하는 정도가 강할수록 금단 증상을 더 강하게 경험합니다. 흡연의 욕구 또한 흡연이 허용되지 않는 맥락에서는 자연스럽게 가라앉다가, 허용된 맥락으로 돌아가는 순간 되살아납니다. 담배에 대해 한쪽으로 치우친 견해를 가진 사람보다, 긍정적·부정적 면을 함께 보는 사람이 금연에 더 자주 성공한다는 결과도 인용됩니다.
이 모든 결과의 공통점은 분명합니다. 중독은 단순한 화학 작용이 아니라 맥락 속에서 작동하는 인식의 작용이기도 합니다. 맥락을 바꾸는 일이 곧 치료의 일부가 됩니다.
저자는 플라세보 효과에 대해서도 짧지만 분명한 입장을 보입니다. 아무런 약효가 없는 물질로 증상이 호전될 때, 우리는 흔히 그것을 "단순한 심리적 문제였을 뿐"이라고 폄하합니다. 그러나 저자는 그 시각이 잘못이라고 봅니다.
저자는 플라세보, 최면, 자기 암시, 신앙 요법, 심상 떠올리기, 긍정적 사고, 바이오피드백을 한 묶음으로 이해할 것을 권합니다. 이 모든 도구가 결국 건강에 나쁜 맥락에서 건강에 좋은 맥락으로 옮겨가는 방법들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저자가 덧붙이는 한 줄이 인상적입니다. 이런 복잡하고 간접적인 도구에 의지하지 않고도, 마음챙김이라는 의도적인 방식으로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더 많이 알수록, 우리는 자기 건강에 대해 더 큰 통제력을 가지게 됩니다.
저자가 인용하는 가장 강한 사례 중 하나가 최면을 통한 사마귀 치료입니다. 최면을 받아 사마귀를 없애라는 지시를 받은 14명 중 9명이 실제로 사마귀를 없애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결과는 단순한 신비주의가 아닙니다. 저자는 9장의 결론을 두 가지 방법으로 정리합니다.
이 둘 중 더 오래 가는 효과는 후자입니다. 특정 상황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바꿀 수 있는 능력 자체를 키우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책의 마지막은 두 가지 자연스러운 질문에 대한 저자의 답으로 마무리됩니다.
저자는 정직하게 답합니다. 그것이 목표가 아니라고. 유능한 사람은 언제 어디에 마음챙김이 필요한지를 잘 선택함으로써 주의력을 현명하게 배분합니다.
저자는 유능한 최고 경영자의 두 가지 수준을 예로 듭니다.
두 수준 사이를 유연하게 오갈 수 있는 사람이 마음챙김을 가장 잘 활용하는 사람입니다.
저자는 이 질문이 본질적으로 잘못 설정된 질문이라고 봅니다. 모든 대안을 동등하게 마음챙김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진짜 문제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
점점 더 많은 것을 따져보고 더 많은 질문을 던지면, 결국 답을 알게 될 것이라는 오해.
결정은 정답이 있어서 내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 방향을 마음챙김의 자세로 인식한 다음, 결국 어느 시점에서 직감에 따라 한쪽을 선택합니다. 그 다음 우리가 하는 일은 그 결정이 옳은 결정이라고 인식하고 거기에 힘을 쏟는 것입니다.
여러 선택 가능성을 마음챙김으로 인식할수록 통제감이 커지고, 통제감이 커질수록 다시 마음챙김이 쉬워집니다. 책의 가장 마지막 문장이 그 사이클을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9장은 책에서 가장 강한 메시지를 담은 장입니다. 마음챙김은 단지 사고의 도구가 아니라 몸에까지 작용하는 힘이라는 점, 그리고 그 힘이 플라세보나 최면 같은 우회로를 통해서가 아니라 의도적인 방식으로 활용 가능하다는 점이 정리됩니다.
전체적으로 책은 한 가지 핵심 가설을 끝까지 밀고 갑니다.
우리가 한계라고 믿는 많은 것이, 사실은 맥락과 마인드셋이 만든 변수다.
이 가설이 모든 영역에서 100% 맞는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1980~1990년대의 실험 사례를 자주 인용하다 보니, 일부 결과는 오늘의 시각에서 다시 검증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같은 주장을 다른 사례로 반복하는 느낌이 자주 들었기 때문에, 별점은 5점 만점에 3점에 멈췄습니다.
그럼에도 책이 던지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내가 매일 자동으로 흘려보내는 결정은 어디인가, 그리고 그 자동성이 만든 한계는 어떤 모습으로 내 일상을 좁히고 있는가. 이 두 질문은 분기에 한 번씩이라도 꺼내볼 만한 질문이라고 느꼈습니다.
책을 덮은 다음 다음 한 주 동안, 매일 한 가지씩 "오늘 자동으로 지나갔다고 느낀 결정"을 적어봅니다. 5일치만 모여도, 자기 일상에서 마음챙김의 여지가 가장 큰 영역이 어디인지 눈에 또렷이 보입니다. 그곳이 다음 마음챙김 훈련을 시작할 자리입니다.
이로써 "마음챙김" 시리즈를 마칩니다. 1부에서는 마음을 놓치는 풍경을, 2부에서는 마음챙김이라는 무기를 적용하는 다섯 영역을 함께 따라갔습니다. 끝까지 함께 읽어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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