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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년간 한국 기업의 화두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X, Digital Transformation)이었습니다. 종이 문서를 디지털로, 오프라인 채널을 온라인으로, 수기 처리를 자동화로 옮기는 흐름이었습니다. DX의 핵심은 프로세스의 디지털화였습니다.
AX(AI Transformation)는 거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갑니다. 단순히 일을 디지털 도구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생성형 AI를 조직 운영의 한 구성원처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책은 이를 "생성형 인공지능 시대에 일어나는 조직 운영의 대전환"이라 부르고, 이런 조직을 AX 조직(AI Transformation Organization)이라 명명합니다.
차이는 단어의 무게에서 드러납니다. DX는 도구의 교체였지만, AX는 일하는 방식과 조직 구조 자체의 재설계입니다. 부서와 직위의 경계가 흐려지고, 평가 방식이 바뀌며, 인재상이 다시 정의됩니다.
전통적인 조직은 부서(Department)와 직위(Position)라는 두 축으로 짜여 있습니다. 마케팅팀의 과장, 개발팀의 차장, 영업팀의 부장 같은 좌표가 한 사람의 일과 권한을 정의합니다. 이 구조는 분업과 책임 소재의 명확화에 강점이 있지만, 변화 속도가 느리다는 약점이 있습니다. 새로운 과제가 생기면 부서 간 R&R 조정에만 몇 주가 걸립니다.
AX 조직은 이 두 축을 느슨하게 만듭니다.
부서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 크로스 포지션(Cross Position), 직위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 울트라 플랫(Ultra Flat) 입니다.
크로스 포지션은 한 사람이 여러 부서/역할에 동시에 소속되어 일하는 방식입니다. 마케터가 데이터 분석도 직접 하고, 개발자가 사용자 인터뷰에도 참여하며, 디자이너가 카피라이팅도 함께 다듬습니다. AI 도구가 도메인 간 진입 장벽을 낮추면서 이런 횡단이 현실적으로 가능해졌습니다.
과거에는 데이터 분석을 하려면 SQL을 배우고, 사용자 인터뷰를 하려면 정성 조사 방법론을 익혀야 했습니다. 지금은 LLM이 SQL을 생성해 주고, 인터뷰 녹취를 자동 정리해 주며, 디자인 시안을 텍스트로 만들어줍니다. 한 사람이 다룰 수 있는 영역의 폭이 압도적으로 넓어진 것입니다.
크로스 포지션의 핵심은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다 잘한다"가 아닙니다. 한 사람이 여러 영역에 진입할 수 있는 도구가 갖춰졌고, 조직이 그 진입을 권장한다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여전히 깊이 있는 전문성을 갖춘 채 다른 영역에 가볍게 손을 뻗고, 누군가는 처음부터 폭넓게 펼쳐서 일합니다.
울트라 플랫은 직위 위계를 거의 없애는 조직 구조입니다. 직급이 의사결정 권한과 분리되고, 책임은 직급이 아닌 역할 단위로 부여됩니다. 미국의 일부 테크 기업에서 먼저 시도된 모델로, 한국에서도 IT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확산되어 왔습니다.
울트라 플랫이 정착되려면 한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자율과 책임이 함께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유롭게 업무를 수행하는 만큼, 결과에 대한 책임도 본인이 집니다. 누군가가 위에서 결정해 주지 않기 때문에, 잘못된 의사결정의 비용도 본인이 감당합니다.
이 모델은 모든 조직에 맞지 않습니다. 책임이 분명한 결정이 빠르게 필요한 조직(제조, 의료, 군), 정형화된 프로세스가 강점인 조직에는 오히려 혼란을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창의적 산출물이 핵심이고 빠른 적응이 중요한 조직에서는, 울트라 플랫이 만들어내는 의사결정 속도가 압도적입니다.
조직 구조가 바뀌면 평가 방식도 바뀌어야 합니다. 전통적인 KPI(Key Performance Indicator)는 핵심 성과 지표를 통해 목표 달성 여부를 수치로 측정하는 하향식 평가입니다. 위에서 정한 숫자를 아래에서 채우는 구조입니다.
OKR(Objective and Key Results)은 다릅니다. 조직과 팀, 개인의 목표(Objective)를 명확히 하고, 그것에 도달하기 위한 핵심 결과(Key Results)를 어떻게 만들지를 구성원이 자율적으로 설계합니다. 회사는 목표와 방향만 제시하고, 도달하는 구체적 방법은 구성원이 찾는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 구분 | KPI | OKR |
|---|---|---|
| 방향 | 하향식 | 상향식+양방향 |
| 측정 대상 | 결과 지표 | 목표와 핵심 결과 |
| 변경 주기 | 연간 | 분기 단위 갱신 가능 |
| 도전성 | 달성 가능한 수준 | 70% 달성이 적정 수준 |
| 적합 조직 | 안정적, 정형화된 업무 | 변화 빠른, 창의적 업무 |
OKR이 모든 KPI를 대체하는 것은 아닙니다. 둘은 보완 관계로 쓰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안정적으로 유지해야 하는 운영 지표는 KPI로 관리하고, 도전적이고 변화하는 목표는 OKR로 설계하는 식입니다. AX 조직은 이 두 평가 도구를 상황에 맞춰 능동적으로 조합합니다.
DX 시대의 이상적 인재상은 T형 인재였습니다. 가로획은 다양한 영역에 대한 폭넓은 관심과 일반 역량을, 세로획은 한 가지 영역에서의 깊은 전문성을 의미합니다. "자기 전공이 뚜렷하면서, 다른 분야와도 협업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AX 시대의 새로운 인재상은 파이(π)형 인재입니다. T형의 가로획과 세로획에 더해, AI 활용 능력이라는 두 번째 세로획이 추가됩니다.
파이형 인재의 두 번째 세로획은 단순한 도구 사용 능력이 아닙니다. AI를 어디에 어떻게 적용하면 가장 큰 가치가 만들어지는지를 판단하는 메타 역량입니다. 자신의 첫 번째 세로획(도메인 전문성)을 AI로 증폭시키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 다음 10년의 핵심 인재가 됩니다.
이 변화의 함의는 명확합니다. 도메인 전문성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AI 활용 능력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둘이 결합될 때만 시너지가 만들어집니다. 의학을 깊이 아는 의사가 AI를 잘 쓰면 진단 속도가 압도적으로 빨라지지만, AI만 잘 쓰는 비전공자가 의료 의사결정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거꾸로, 의학만 깊이 알고 AI를 외면하는 의사는 곧 5년 차 후배에게 추월당할지도 모릅니다.
AX 조직은 본질적으로 조직 단위의 휴먼인더루프입니다. 2장에서 살펴본 명령자·검증자·완결자라는 역할 분담이, 개인을 넘어 조직 단위로 작동합니다. 어떤 팀은 명령자(전략·기획)에 더 가깝고, 어떤 팀은 검증자(품질관리·법무·보안)에 가까우며, 어떤 팀은 완결자(브랜드·고객 응대)에 가깝습니다.
이 분담이 의식적으로 설계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팀이 같은 일을 AI로 빠르게 만들어내면서, 정작 점검과 마무리는 누구도 맡지 않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결과물의 양은 폭증하는데 품질은 후퇴하는 역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AX 도입의 가장 흔한 실패 패턴은 "모든 직원에게 ChatGPT 라이선스 제공"으로 끝내는 것입니다. 도구는 들어왔지만 조직 구조와 평가 체계, 인재상의 재정의가 따라오지 않은 AX는 사실상 비싼 자판기에 가깝습니다.
AX 조직은 도구의 교체가 아니라 조직의 재설계입니다. 부서의 경계는 크로스 포지션으로, 직위의 경계는 울트라 플랫으로, 평가는 KPI에서 OKR로, 인재상은 T형에서 파이형으로 — 이 네 축의 변화가 함께 일어날 때만 AX가 작동합니다.
다음 4장에서는 AI가 만든 또 다른 거대한 변화, 제로클릭(Zero Click) 시대를 살펴봅니다. 검색이 사라지고 답변이 그 자리를 대신하면서, 검색 엔진 최적화(SEO)라는 20년 된 마케팅 패러다임이 답변 엔진 최적화(AEO)와 추천 엔진 최적화(REO)로 옮겨가는 흐름이 핵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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