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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챕터는 독서모임에서 내가 정리한 회고와 토론 답변을 모은 기록이다. 앞선 10개 장이 책의 키워드를 따라 풀어낸 시리즈 본문이라면, 이 장은 같은 책을 두고 동료들과 나눈 대화 끝에 내 자리에 남아 있던 메모에 가깝다. 본.깨.적 형식 없이 다섯 관점의 토론과 자유 기재만으로 정리했다.
총평을 미리 한 줄로 적어 두자면, 발간 시점을 살짝 놓치고 읽은 탓에 다소 늦은 감이 있었지만, 그래도 상식의 폭이 한 단계 넓어졌다는 정도였다. 새롭게 부각된 키워드 가운데 몇 가지는 업무에서도 곧장 써먹을 수 있는 도구가 되어 주었다.
별점은 5점 만점에 3점이다. 책이 출간되고 곧바로 읽었다면 같은 내용이 훨씬 더 강하게 와닿았을 텐데, 다소 늦게 손에 든 만큼 트렌드 키워드의 신선도가 일부 떨어진 상태로 읽게 된 점이 아쉬웠다. 그럼에도 상식의 폭이 한 단계 넓어진 감각이 또렷이 남았다. 특히 필노코미, 레디코어, 픽셀라이프 세 키워드는 평소에 잘 다루지 않던 결의 이야기라 신선했고, 책 전체의 가치를 끌어올려 준 대목이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개념은 "파이형(π) 인재"였다. 기존의 T형 인재가 두루두루 넓은 일반적 역량과 한 가지 영역의 깊은 전문성을 함께 갖춘 사람이었다면, 파이형 인재는 여기에 AI 역량이라는 두 번째 기둥을 더한 모델이다.
이 표현이 강하게 남은 이유는, 결국 AI 시대라고 해서 AI 역량만 키우는 방향으로 달려가서는 안 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분명하게 짚어 주기 때문이다. 기존의 도메인 전문성을 놓치지 않고 나란히 가져가야, "파이"의 두 다리가 비로소 균형을 이룬다. AI 역량 학습을 도메인 전문성 강화와 분리하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으로 새겨 두었다.
저자의 주장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사례는 특별히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그중에서 묘하게 허탈한 느낌이 든 것은 "레디코어"였다.
특히 "인생 예행" 부분에서, 요즘 사람들이 관리자 역할을 맡기를 원치 않는다는 진단이 들어 있었다. 이유는 과도한 책임과 개인 시간 감소다. 이를 회피하는 전략으로 같은 자리를 유지하면서 무형 자산을 축적하는 "옆그레이드"가 부각된다. 진단 자체는 정확해 보였지만, 한 사회의 다음 세대가 관리자 자리를 점점 비워 둔다는 흐름이 결국 어디로 흘러갈지에 대해서는 저자도 강한 답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에서 허탈함이 남았다. 트렌드를 묘사하는 데까지는 충실했지만, 그 트렌드의 부작용을 어떻게 보완할지에 대한 질문은 독자의 몫으로 넘어와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업무에 직접 가져다 쓸 수 있는 키워드를 골라 보자면 두 개가 두드러졌다.
첫째는 "제로클릭"이다. 검색 결과에 들어가지 않고 답변 자체로 소비가 끝나는 시대에는, 검색 최적화에 머물지 말고 답변 최적화 그리고 추천 최적화까지 시야를 넓혀야 한다. 약어로 정리하면 SEO(Search Engine Optimization)에서 AEO(Answer Engine Optimization), REO(Recommendation Engine Optimization)로 넘어가는 흐름이다. 콘텐츠를 만들고 노출시키는 기획 자체가, "검색 결과에 노출되는 페이지"가 아니라 "AI 답변에 인용되는 단락"과 "추천 알고리즘에 골라 잡히는 신호"를 함께 설계해야 하는 단계로 옮겨 가고 있다.
둘째는 "픽셀라이프"다. 사용자의 삶이 더 잘게 쪼개지고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는, 한 번에 완성된 거대한 결과물보다 MVP를 빠르게 내놓고 레슨 앤 런(lessons & learn)처럼 반복적으로 다듬어 가는 방식이 시장에서의 생존력을 가른다. 거창한 로드맵보다 작고 빠른 사이클을 어떻게 보장할지가 최우선 과제다.
가장 먼저 적용해 보고 싶은 것은 픽셀라이프에서 빌려 온 "MVP를 빠르게 제공하고 레슨 앤 런으로 반복 개선" 사이클이다. 이 패턴을 머리로만 알고 있는 것과, 실제 프로젝트의 일정과 산출물 단위를 그렇게 잘게 쪼개 두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어떤 단위에서 학습 루프를 닫을 것인지, 그리고 그 루프를 한 바퀴 도는 데 며칠 정도가 적절한지를 다음 프로젝트에서 의식적으로 설계해 보려 한다.
또 하나는 평가 체계의 변화다. 책이 짚은 흐름과 별개로, 현장에서도 KPI에서 OKR로 평가 기준이 옮겨 가는 움직임이 보인다. KPI(Key Performance Indicator)가 핵심 성과 지표를 통해 목표 달성 여부를 수치로 측정하는 하향식 방식이라면, OKR(Objectives and Key Results)은 조직과 팀, 개인의 목표를 분명히 한 뒤 그 달성 과정을 추적해 가는 방식이다. 회사는 목표와 방향만 제시하고, 그 지점까지 도달하는 구체적 경로는 구성원이 자율적으로 찾아 나선다는 점이 핵심이다.
이 변화는 관리자에게도 적용된다. 팀원의 업무를 관리한다는 표현보다, 방향을 제시하고 자율 경로를 지지하는 형태로 운영 방식 자체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결론에 닿았다.
자유 기재 항목에는 본문에서 따로 힘주어 다루지는 않았지만 메모로 남겨 두고 싶었던 키워드 몇 가지를 적어 두었다.
첫째, "건강지능(HQ)"이다. 자기 관리를 실천하는 역량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아지고 있다는 진단을 읽으며, 솔직히 그 흐름에서 내가 한 발 뒤처져 있다는 자각이 들었다. 어느 정도까지를 "기본"으로 삼을지에 대한 사회의 기대치 자체가 빠르게 올라가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겠다.
둘째, "1.5가구"는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에 곧장 와닿지는 않았지만 알아 두어야 할 분류였다. 책은 이를 세 유형으로 정리한다. 지원 의존형 1.5가구는 혼자 살면서 자율성은 유지하되 주변의 지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형태고, 독립 지향형 1.5가구는 동성 친구 등과 함께 살면서도 공간·역할·시간의 경계를 분명하게 유지하는 형태다. 시설 활용형 1.5가구는 코리빙 하우스나 셰어 하우스처럼 최소한의 개인 공간은 보장되지만 거실·주방·작업실 같은 매력적인 공용 공간을 함께 쓰는 방식으로, 자율성과 비용 분담, 외로움 해소를 동시에 노리는 모델이다.
셋째, "휴먼인더루프"는 모두가 이미 알고 있을 법한 키워드라 가볍게 넘기려 했는데, 그 안의 분류는 사실 잘 정리하고 있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하게 됐다. 업무 처리의 순환 고리에서 인간과 AI 가운데 누가 얼마만큼의 주도권을 갖느냐에 따라, 인간 중심의 "AI 인 더 루프", 인간-AI 파트너십의 "휴먼 인 더 루프", AI 중심의 "휴먼 온 더 루프"와 "휴먼 아웃 오브 더 루프"로 나뉜다. 단어만 들으면 모두 비슷해 보이지만, 어느 단계에 어떤 형태로 사람이 개입하느냐가 시스템 설계의 결을 완전히 갈라 놓는다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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